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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과 어리석은 자의 기록(愚行錄)

::사는 이야기/::Books

by capt'nSilver 2017. 10. 1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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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설은 공통점이 많다.
이야기하는 화자(話者)가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배웠던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수의사이자 딸의 아버지이자,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어리석은 자의 기록(이하 우행록)은 주간지 기자가 1년 전에 일어난 일가족 몰살사건을 취재하는 것이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챕터가 끝나면 나오는 한 여자가 오빠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기록(記錄)이라는 소재가 중요하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를 겪고 있는 연쇄살인범이 기억을 잊지 않으려 녹음기에 일기를 남긴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행위를 하나하나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마치 무능한 경찰을 조롱이라도 하려는 듯 살해방법을 자세히 묘사해 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의 뇌는 기억의 연결선들을 야금야금 끊어 버리게 되었다. 살인자는 자기가 했던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혹은 자기 딸을 지키기 위해 녹음기에 하루 일과를 기록한다.
우행록은 1년전 일어난 중산층 가족의 끔찍한 몰살 사건을 주간지 르포 기자가 취재하며 남기는 취재일지이다. 1년이나 시간이 지났지만, 해결이 안돼 미제사건으로 남은 사건을 데스크에 겨우 허락을 얻어 차근차근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해친다. 소설은 그 취재일지이다.

 

반전(反轉)이 묘미(妙味)이다.
두 소설은 모두 독자에게 커다란 배신감을 안겨준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시작부터 그야말로 팽팽한 실을 한껏 잡아당겨 이 실이 언제 끊어질 것인지를 기다리며 한자한자, 한 장 두 장 읽어나가는 즐거움을, 실을 잡아당기던 두 손을 놓아버려 한껏 긴장하고 있는 독자에게 묵직한 해머로 뒤통수를 힘껏 내려친다. 독자는 배신감 뒤에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후르륵 앞 챕터들을 다시 정독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봤자 돌아오는 것은 또다시 뒤통수를 강타하는 해머질이다.
우행록은 살해된 가족, 특히 부부의 이웃들과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기록한 취재일지이다. 그렇다 보니 독자들은 살인의 동기와 범인의 윤곽이 드러날까 싶어 취재일지를 지루함을 이겨가며 꼼꼼히 탐독한다. 하지만 사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부의 험담 혹은 찬양이 적절히 섞여있을 뿐이다. 게다가 챕터가 끝나면 나오는 여자의 이야기는 흐름을 완전히 끊어 놓는다. 이 이야기가 대체 일가족 몰살과 상관관계가 있나 하는 의구심에 더욱 짜증스럽다. 하지만 취재를 이어가던 중 인터뷰를 했던 한 명이 묻지마 살인으로 피해자가 되며 취재일지와 여자의 이야기는 서로 역할이 바뀐다. 그리고 독자는 턱이 빠져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혀 예상도 못한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간다. 독자들이 그렇게 알고 싶던 사건의 동기와 범인, 살해 방법이 맥 빠지는 방법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스크린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시쳇말로 초월이식(超越移植)을 노렸다는 게 뻔뻔하게 보였다. 소설의 설정은 여기저기 가위질되거나 살집이 입혀졌다. 그래도 원작을 차근차근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후반부에 소설과는 또 다른 해머 뒤통수 공격을 가한다. 아마도 어쩌면 소설의 의도를 다른 방법으로 추구했을 지도 모르겠다.
우행록은 일본영화 특유의 친절함이 묻어나온다. 특히 초반에 범인이 누구인지 힌트를 너무 많이 준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원작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나름 원작을 재해석했다고 포장이라도 가능하지만, 우행록은 원작을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했는가 의문이 든다.

 

::보물섬을 꿈꾸는 capt’n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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